MARTIAL ARTS

무술의 종류 


 자료 출처 : 위키백과 (2022)
  
무술의 종류 

  1. 무예(武藝  martial arts, fighting arts, fighting systems)
             무예는 근대 이전의 전통적인 전투 기술에서 발전한, 심신(心身)의 단련을 위한 체계적인 수련 방법을 말한다.  무술(武術), 무도(武道), 격투기(格鬪技)으로 부르기도 한다. 엄격히 정의하자면, 무예는 싸움의 기술
         을 뜻하는 격투기나 무기(武技), 무술(武術)보다 더 넓은 의미를 담는 단어로서, 단순히 싸움의 기술만을 다루는 것이 아닌, "예"(藝), 즉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데에 목적과 의의를 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도(武道)는 "도리"(道理), 즉 정신 수양에 좀 더 무게를 두는 것을 함축한다.  현대에는 실질적으로 크게 구분 짓지 않고 거의 같은 말로 사용한다. 하지만 단순히 체력 단련이나 스포츠 등과는 명확히 구분을 짓는
        다. 무예의 한 측 면으로서 겨루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 스포츠화시킨 것이 바로 격투 스포츠(Martial Sport 또는 Combat Sport)이다.
           세계에는 다양한 무예가 존재하나 타인을 제압하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수련을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어떤 무예는 불교, 도교 등의 종교나 철학적 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기도 하며, 다른 어떤
       무예는 실전을 강조하기도 한다.

  2. 역사
          고대 그리스에서는 판크라티온이라는 격투기가 있었는데 이것은 물어뜯거나 손가락으로 눈을 찌르거나 급소를 치는 행위를 제외하고는 주먹 지르기, 발차기, 꺾기, 조르기, 던지기 등의 모든 기술이 허용되는 종합
       격투기였다.  일정한 규칙 없이 상대방이 완전히 항복할 때까지 진행되었던 이 경기는 많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로부터 고대 올림픽에서 가장 가치있는 경기로 극찬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고대부터 수박(手撲)이라는 경기가 있었는데 이 역시 무기를 들지 않고 싸우는 격투기의 일종이었다.  수박이 최초로 등장하는 문헌은 《고려사》이나 4세기경 축조된 안악 3호분의 고구려 벽화에 이미
       서로 대련하는 사람을 묘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한 명이 여럿을 상대하는 수박은 오병 수박회라 하였다.  조선시대 정조는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로 하여금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하게 하여 전해오던 무예를 종합
       하였다.

   3. 종류
         무예는 전 세계에서 대단히 많은 종류가 알려져 있다. 다음은 잘 알려진 무예의 종류이다.

         타격기   발과 손, 팔꿈치, 무릎 등을 사용하여 상대방에게 타격을 가하는 기술이 주가 되는 무예이다. (발차기, 주먹 지르기 등)
  •                           권투(복싱),   가라테(공수도),  킥복싱,  사바트,  무에타이,  카포에이라,  쿵후

         유술       근접 기술로서 상대방의 신체를 힘 또는 기술로서 직접적으로 상해를 입히거나 제압을 하는 무예이다.(메치기, 관절기, 조르기, 누르기, 꺾기 등)
  •                          글리마,  레슬링,  브라질리안 주짓수,  씨름,  유술(주짓수),  유도,  아이키도,  삼보

        혼합형 무예     무기와 타격기, 관절기, 모두를 사용하는 무예이다.
  •                         택견,  한풀,  합기도,  한무도,  우슈,  절권도,  크라브 마가,  이스라엘리 크라브마가,  코만도 크라브 마가,  공권유술,  시스테마,  영춘권,  컴뱃 삼보,  에스크리마  

  세계무술 소개
  •         A. 권투 :  권투(拳鬪) 혹은 복싱(Boxing), 격투(格鬪)는 격투 스포츠 종목 중 하나이다.   주먹에 글러브를 끼고 펀치만을 사용해 상대방 허리벨트 위의 상반신 전면과 측면만을 공격한다.   복싱이라는 이름이 붙은
  •                           경기로는  킥복싱, 체스 복싱 등도 있다.

  •                   - 역사
                              고대 조각이나 벽화에 나타난 바에 따르면 권투는 BC 3000년 전에 시작되었다.  기원전 2000여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부조를 들 수 있으며, 고대 이집트 제18왕조의 무덤에서 
  •                       미츠키나이테 발굴된 권투시합 장면이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다른 문명권에서와는 달리 권투가 아주 성행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레슬링 및 봉술에 관한 자료에 비해서 권투에 관한 유물은
  •                       이 18왕조의 것이 유일하다.
                              제23회 고대 올림픽에서 권투가 처음으로 정식종목으로 채택됐으며 최초의 금메달 리스트는 SMYRNE이다.   제41회부터 소년 권투가 시작되었고 왼손 권투선수인 TISANDROS가 BC 572-560에 고대
  •                       올림픽에서 4연속 우승을 하였다.  그 후 기독교 신부들의 요청으로 로마 황제 호노라스가 권투를 금지했고,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더불어 음지에서 행해지던 권투가 부활하기 시작하였다.
                              AD 1000년경에 공식적인 경기장에서 시합이 시작되었고 개신교도인 MERCURY가 처음으로 권투를 인정하였다.   1719년에 JAMES FIGG가 챔피언에 올랐고 이때는 체급의 구분이 없었으며 1730년
  •                       까지 계속 챔피언 타이틀을 유지하였다.
                              1743년에 JACK BROUGHTON이 최초의 규정을 발표하여 "BROUGHTON"이라 정하였다.   그 후 1892년 글러브를 끼고, 1라운드는 3분, 휴식은 1분으로 하며, 다운이 되어 10초 이내에 일어 나지 
  •                       못하면 상대편의 승리로 인정하는 퀸스베리 규칙(Queens Berry'S rule)이 제정되었다.   1896년에 하계 올림픽이 개최됨에 따라 세계각국에서 권투연맹이 결성되어 국제교류가 시작되었다.   1946년 국제
  •                       아마추어 권투 연맹이 영국 런던에서 발족하였고, 1964년 기준 전 세계의 권투인구는 182개국에서 약 200만명이 활동하고 있다.

  •                  - 프로권투와 아마추어 권투
                             복싱은 크게 프로권투와 아마추어 권투로 나뉜다.   프로권투는 대전료(Fight Money)수입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적인 스포츠이며, 한국권투위원회에서 주관하는 프로테스트 에 합격해야 프로권투 선수로
  •                       활동할 수 있다.
  •                          경기시간은 1라운드(R)3분이며, 헤드기어와 런닝셔츠를 착용하는 아마추어와는 달리 상의를 탈의하고 트렁크(Trunk,운동선수가 착용하는 팬티)를 착용한다.   고 김득구 선수가 레이 맨시니
  •                      선수와의 경기도중 뇌손상으로 죽은 사고이후 세계타이틀 경기는 12라운드, 국내타이틀 경기는 10라운드까지 경기한다.

  •                   - 올림픽
                             올림픽에서의 권투는 한 경기 당 3라운드로 진행되며 3라운드가 끝나도 승부가 결정되지 않을 경우 판정으로 승부를 결정한다.   또한 권투는 다른 종목과는 달리 준결승에서 패하면 3/4위전 없이 무조건 
  •                      동메달로 처리하기 때문에 다른 종목에 비해 동메달이 한 개가 더 많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오직 선수의 안전 때문으로 경기에서 한번이라도 패한 선수는 부상(또는 사망)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므로 두 번
  •                      다시 경기를 시키지 않기 때문에 준결승에서 패하면 무조건 동메달로 처리하는 것이다.

  •       B.공수도 :   공수도(空手道) 또는 가라테(일본어: 空手)는 류큐국 (현재 일본의 오키나와)에서 기원한 손과 발을 이용해서 상대를 타격하는 무술이다.   일본 본토로 전파되었다.   17세기 일본 사쓰마 번의 침략에 의해
  •                               무기를 소유할 수 없게 된 류큐(지금의 오키나와)의 무인들은 중국 남권을 간략화한 당수(唐手)를 수련하게 되는데 이것이 '수(手)'의 모체다.   근대 공수도의 아버지로 불리는 후나코시 기친(船越義珍,
  •                               1868 - 1957)에 의해 20세기 초부터 일본 본토에 전수되었고, 중일전쟁 등으로 중국에 대한 감정이 나빠지자, 중국을 의미하는 '당(唐)'자는 폐기되고 같은 발음인 '공수(空手)'로 대체된다.   이는 비어있는
  •                               손이라는 뜻으로, 맨손으로 하는 무술임을 뜻하기도 한다.
  •                  - 유파
                        전통 가라테 : 대련을 할 때 상대가 부상을 입지 않도록 공격이 몸에 닿기 직전에 멈추는 것(슨도메)이 특징이다.   후나코시 기친이 세운 송도관(松涛館 쇼토칸), 미야기 초준(宮城長順,1888-1953)이 세운 
  •                                                강유류(剛柔流 고주류)를 비롯하여, 사동류(絲東流 시토류), 화도류(和道流 와도류) 등이 있다.
                       풀 컨택트 가라테 : 직접 타격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최영의가 창시한 극진가라테 극진회관(極眞会館)이 중심으로, 극진회관에서 분파된 아시하라회관, 원심회관 등이 있다.
                       기타 : 글러브를 끼고 안면타격까지 허용하는 글러브 가라테(K-1을 주최하는 정도회관이 대표적),  메치기와 관절기 등을 포함하여 종합격투기에 가까워진 유파들(대도숙 공도 등)도 있다.

                    - 대한민국 공수도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에서 가라테를 배운 사람들은 해방 이후 한국에 돌아와 도장을 연다.   일본에서 쇼토칸 가라테를 배우고 청도관 영향을 받은 육군소장 최홍희가 이승만 대통령 앞에서 부대의 가라테
  •                   시연을 했는데 그걸 본 이승만이 택견으로 착각하고 고유무술인 택견이라고 칭찬한 일을 계기로 최홍희는 군 가라테 도장이었던 오도관 중심으로 5개 기관도장(청도관, 송무관, 무덕관, YMCA 권법부, 창무관)
  •                    을 통합하여 태권도로 이름을 바꿔걸게 된다.
                            특히 청도관 송무관은 쇼토칸 가라테의 아버지 후나코시 기친의 직계 제자였던 이원국 노병직이 세운 가라테 도장이었으며 무덕관의 경우 황기관장 본인은 가라테를 배운적 없고 서적 독학을 했으며 중국권
  •                    법을 배웠다지만 실질적으로 가르치던건 쇼토칸 가라테 였다는 일부 원로들의 증언이 있다.   YMCA 권법부는 윤병인이 배운 슈도칸 가라테를 중심으로 가르쳤다한다

  •       C.  태권도(跆拳道,Taekwon-Do) : 대한민국의 국기(國技)로,  무기 없이 손과 발을 이용해 공격 또는 방어하는 무도로, 빠르고 강력한 발차기 기술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창작 무술이다.   1988년 하계 올림픽에서 시범
  •                                                                             종목으로 채택되었고, 2000년 하계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               - 역사
                          1945년 일제 해방을 전후해 국내에 여러 개의 무술 도장이 생기게 된다.   그 중 소위 '5대관'(청도관, 송무관, 무덕관, 지도관, 창무관)이 가장 유명하였는데, 이 도장들이 분화하여 생긴 9개관이 1960년대에
  •                  합쳐져서 현대 태권도의 모체가 된다.
                          특히 영향력이 강했던 도장은 청도관과 무덕관으로, 최초의 태권도장인 청도관은 이원국에 의해 설립됐는데, 그는 어렸을 때 서울 안국동에서 택견을 수련했고, 이후 일본으로 유학을 가 대학을 다니면서
  •                  근대 가라테의 아버지 후나코시 기친에게 송도관 가라테를 배웠다.   본인은 오키나와 무술로도 생각한듯. 중국에서는 쿵푸를 수련했다는 말도 있다.   다만 도장의 수련 스타일은 가라테 도장이었다.   이후 이원
  •                  국은 본인을 한국 태권도 창시주로 지칭하기도 했다.
                          당시 최대의 태권도장이던 무덕관(1953년과 1970년 사이에 전체 태권도 수련자의 약 75%가 무덕관에서 배웠다)은 황기에 의해서 설립됐는데, 그는 어릴 때 택견을 배우고,  중국에서 태극권과 쿵푸를 배웠
  •                  다. (다만 자료 부족으로 그의 경력이 의심받기도 한다.)   가라테는 직접 배운 적은 없고 책을 읽은 적은 있다.   황기는 전통무예에 관심이 많아 당수도로 시작했던 도장 명칭을 이후 화수도, 수박도 등으로 바꾸고
  •                 본인 주장대로라면 전통무예 수박에 영감을 얻어 본인의 창작무술 수박도를 창안하기도 하나, 태권도 통합 과정에 가장 소극적인 편이라 제자들과도 불화를 겪다 결국 무덕관에서 제명당하고 만다.   나머지 도장
  •                 들도 주로 가라테 베이스 도장이 많았다.
                          한편, 군 장성이었던 최홍희는 민간도장과는 연이 없었으나, 청도관 출신 인사들이 많던 군대내 도장 오도관을 창립하고 초대관장이 된다.   그는 어려서 택견을 배웠다는 말도 있고[2], 일본 중앙대학을 다니면
  •                 서 가라테를 배운 뒤, 군에서 복무하며 군대격투기로 가라테를 지도하였다.    1954년 그의 부대를 시찰한 이승만이 일종의 변형 가라테 시범을 관람한 후 택견으로 착각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최홍희는 택견과
  •                 비슷한 단어를 찾다 태권에 도를 합하여 태권도라는 명칭을 창안했다.   1953년 제29보병사단장이 된 그는 부대명을 태권도부대라 명명하고 경례구호도 태권이라 한다.
                          1959년 처음 대한태권도협회가 만들어졌고, 1966년 국제태권도연맹(ITF)이 만들어져 최홍희가 총재로 취임한다.   1972년 최홍희가 정권과 갈등을 빚다 캐나다로 망명하며 ITF 본거지를 토론토로 옮기자,
  •                  대한태권도협회를 중심으로 새로 세계태권도연맹(WTF)을 창립하여 태권도 보급에 나선다.   1973년에는 국기원이 건립되었다.   ITF는 북미권에서 인지도를 얻다 1980년대 이후 북한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
  •                  에 태권도를 중심적으로 보급하며, WTF와 함께 세계 태권도계를 양분하게 된다.   2007년 기준으로 WTF에는 185개국이 회원으로 가입되었고, 약 680여만 명의 유단자가 배출되었으며, ITF에는 2007년 기
  •                  준으로 102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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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 미국에 태권도를 보급할 때, 어려운 점 중 하나는 미국인들이 영어로 된 태권도 간판을 보고 중국 음식점이라 생각하고, 도장문을 들어 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당시에 동양무술하면 가라테가 전부인
    •                  줄 아는 미국사람들은 태권도는 처음 들어 보는 말이었다.   그래서 태권도는 "코리아 가라테", 쿵후는 "차이니즈 가라테"라는 식으로 도장간판을 냈고, 주 체육위원회에서도 가라테로 등록했다.   물론 이후 태권
    •                  도가 급성장하면서 정식으로 태권도 명칭을 사용했고, 주 체육위원회에서도 가라테에서 독립해서 독자적으로 태권도로 이름을 냈다.
    •                      코리언 가라데라는 용어는 1970년대에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독일에서는 생소한 '태권도'란 영어대신 “코리언 가라데”라는 간판을 달고 태권도를 보급했다.   그래야만 유사무도인 한국의
    •                  태권도를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은 일본 가라데의 해외 보급은 태권도보다 20년 이상 앞서 시작됐다. 뒤늦게 해외로 진출하기 시작한 한인사범들은 어쩔수 없이 태권도라는 용어 대신 코리안 가라데라는
    •                  간판을 걸고 태권도를 보급해야 하는 전략을 구사할 수 밖에 없었다.
    •                       1968년 일본 동경에서 인쇄, 발간된 조시학 씨의 저서인 태권도 문헌도 "코리안 가라데"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었다.   이 책은 인기리에 판매되었고 1983년에 21쇄가 발간되었다.   조시학씨는 책 서문에서 
    •                  태권도 대신 코리언 가라데라는 제명을 사용하게 된 이유는 영어권에서는 이미 가라데가 널리 알려져 있었기에 부득이 코리언 가라데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            - 한국 주요 단체

  •              ITF  국제 태권도 연맹 (ITF, The International Taekwon-do Federation)은 최홍희가 1966년3월22일 조선호텔에서  9개국(미국, 일본, 아르헨티나 등)의 승인을 받아서 서울에서 발족했다.   라이트 콘택트제의 룰이지만, 한국만의                         독 자적인 무술을 만들기 위해서 3600개의 새로운 기술의 형태와 총 16권의 태권도 백과사전이 만들어졌다.  1955년최홍희에의해  태권도(跆拳道) 라는 용어가 만들어졌으며 이를반대한 가라데파 공수도                       당수 도 지도자 들이  태 수도로 바꾼것을 1965년 대한태권협회장으로 부임후 다시 태권도 바꾸게 되었다. 오도관 창설시기에는"형"이였지만 그후  틀(WTF의 품새에 해당)에는 한국의 역사나 신화의 인물                              에서 따온 천지(天地), 중근(重根), 세종(世宗), 통일(統一) 등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특이점으로 태권도 창시자를 최홍희로 규정하고 있다.   1972년, 설립자인 최홍희가 박정희 정권과의 정치적 대립으로                        캐나다로 이주하면서 본부가 캐나다로 옮겨가게 된다.   이후 말레이시아를 시작으로 북미, 남미, 서유럽, 오세아니아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 중화인민공화국을 포함한 여러 공산국가에도                          태권도를 보급하였다. 현재본부는 비엔나이며 리용선이가 총재이다

  •              WT 세계 태권도 연맹 (WT, The World Taekwondo)는 김운용에 의해 창설되었으며 21세기에 태어난 현대태권도이다,  최홍희가 1972년 망명한 이후, 남한에서 1973년 설립되었다.   현재 올림픽의 정식 경기                             가 되고 있는 것은 이 단체에서 주관한다.   머리와 몸통을 보호하는   보호구를 착용하도록 하는 등 스포츠에 적합화하여,  ITF 태권도와의 차별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   WT의 품새에는 고려(高麗), 금강(金剛)                       등의 명칭이 쓰인다.   WT는 ITF와 달리 태권도의 기원을 멀리 잡아    "가깝게는 택견으로, 멀게는 삼국시대의 화랑도와 수박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이에 대해선 이견이 존재한다.                                    World Taekwondo Federation (WTF)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였으나, 영어 약자가 내포할 수 있는 부정적인 뜻을 원천차단하고자 2017년 World Taekwondo (WT)로 이름을 바꾸었다.현재 총재는 조정                          원이다.

  •              KTA  세계 태권도 연맹(WTF)의 한국지부인 대한 태권도 협회(KTA, The Korea Taekwondo Association)는 1960년에 설립된 대한태권도협회를 기원으로 한다.   대한태수도협회로 사용하다 최홍희가 대한태                                 수 도협회장으로 취임 즉시 첯회의에서 임원들을 설득 1965년 대한태권도협회로 개칭되었다.   2004년 10월 28일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사단법인으로 설립허가 되었다. 현재 협회장은 최창                             신이다.

  •             WAMF 세계통합무술연맹 (WAMF, World All Martial Arts Federation)은 1998년 진종호에 의해 설립되었다. 21세기 현대에 "새로태어난 무술" (Re-Birth of Martial Arts) 이며, 최홍희의 창헌형을 전수받아                        월남파병 태권도교관단 교관을 역임한바 있으며 공군 사관학교 사범시 1966년 국제태권도연맹(ITF)창설 멤버이다, 1972년 현대태권도로 분류되는  WTF 세계태권도연맹에 영입된 현대태권도의 1세대인                            진종호는  KBS  편성실 기획팀 근무때인 1992년 "제1회 태권도한마당" 방송사상  초유의  종일 생방송을 직접 기안 시행케 하였으며, 한국만의 독자적인 무술로 기록하기위해 미국에                           서 귀국   2012년6월 한국체육대학교 승리관에서 4단이상의 대학생 유단자120명 대상으로 특별지도자교육을 시작으로  2014년3월3일 비영리법인으로 세계통합무술연맹(WAMF)을 대한민국 문화체육                             관광부 소관의 사단법인으로 설립  허가 되었다. 현재 총재는 진종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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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D. 킥복싱:  (Kickboxing, 일본어: キックボクシング)은 발차기와 주먹질에 기반한 격투 스포츠의 하나로서, 주먹과 발, 무릎 등을 사용하여 상대를 타격하는 입식 격투기 가운데 하나이다.   무에타이의 영향을 많이 받
  •                           았고, 풀컨택트 가라테(극진가라테)와 복싱도 기반이 되었다.   자기방어, 피트니스, 접촉 스포츠가 목적이다.

               - 역사
                       한국킥복싱협회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의 킥복싱은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1964년 9월 당시 대한 태권도협회 오도관 전남 본관장인 구판홍 선생님께서 제자들에게 태권도에 대한 지도보급 과정에서 기술적으
  •               로 가장 강한 무술을 만들고자 태권도, 복싱, 유도, 레슬링 등의 특성을 종합적으로 절충하여 치고, 차고, 던지고, 꺾고, 조르는 종합 무술로 체계화하여 킹투기라는 무술을 독창적으로 창안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
  •               여 각종 무술 중에서 가장 과격한 최고의 격투 무술로써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 이후 1968년 4월에 일본의 노구치 오사무 기꾸복싱(킥복싱) 회장이 킹투기의 발상지인 광주에 와서 구판홍 창시자와 최초의 회담을 가졌으며, 일본의 노구치오사무 회장이 무에타이라는 태국의 전통무술
  •               과 극진가라데를 접목시켜 만든 기꾸복싱과 한국의 킹투기를 킥복싱으로 명칭을 통일하기로 하고, 한일 간의 국제 교류를 합의하였다.   그로 인하여 킥복싱이라는 무술이 한국에서 최초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일본에서의 킥복싱은 1963년 극진가라테의 선수였던 쿠로사와 켄지, 나카무라 타다시, 노보루 오자와가 무에타이의 성지인 룸피니 스타디움에 가서 싸우게 된 것을 킥복싱이 만들어진 계기로 본다.   이 시합
  •               에서 나카무라와 노보루는 승리를 거두지만 정작 리더격이었던 쿠라사와 켄지는 참패를 당한다.   종합성적은 2-1로 극진측의 승리였지만, 시합 패배 후 무에타이의 강력함을 실감한 쿠로사와 켄지는 가라테의 
  •               스타일을 살리면서 복싱 펀치와 무에타이 시합룰을 응용한 새로운 무술을 만들게 된다.   일본의 복싱 프로모터 노구치 오사무는 1966년 "킥복싱"이라는 명칭을 고안하고 일본의 복싱이나 가라테 선수를 모아
  •                 "일본 킥복싱 협회"를 만들어서 시합을 시작했고, 이것이 일본과 태국 등지에서 흥행하면서 미국과 유럽까지 퍼져나게 된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초까지 흥성하던 킥복싱은 1970년대 들어 각종 킥복싱 기구의 난립과 오일 쇼크 등의 영향으로 침체일로에 빠졌으나, 1990년대 신설된 K-1이 흥행하면서 부흥기를 맞이한다.   2000
  •               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하던 K-1이 2010년대부터 다시 인기를 잃고 몰락하면서 이후 글로리, 슈퍼컴뱃 등의 단체가 킥복싱의 명맥을 잇고 있다.

  •       E.  사바트 :  사바트(Savate)는 프랑스의 격투기이다.

  •       F. 무에타이 : ( Muay Thai, Thai boxing)는 1,000년 가량을 내려온 태국의 격투 기술이다.   타이 복싱이라고도 불리며 팔꿈치와 무릎, 정강이 등의 파괴력 있는 부위를 주로 사용한다.   무에타이는 현재까지도 올림픽 
  •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지 못하고 있으며 아시아 실내무술 경기대회 정식 종목으로만 남아 있다.  

  •            - 역사
  •                    현재 태국의 주요 구성원인 타이족의 본래 터전은 중국 남부였다고 한다.  10세기경 현재의 인도차이나 반도로 남하한 타이족은 북부 지방 선주민인 몬족과 싸워, 몬족을 멸망시키고 그 터전과 문화를 흡수했
  •               다. 이 때부터 '무어이보란'으로 불리는 타이의 원시 무예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후 타이족은 북부의 수코타이 왕조를 거쳐, 지금의 메콩 강 일대에 시암 왕국(아유타야 왕조)을 세운다.

               - 무에타이의 전설들
                  흑태자 나레수안  타이 시암왕조의 20대 왕. 당시 대국이었던 미얀마(버마)에 맞서 싸웠다. 전투에서 단신으로 맞붙은 버마 왕자를 일격에 쓰러뜨려 승리를 거두었다.
                  나이 카놈 똠   18세기 중반, 시암 왕국을 멸망시킨 버마는 많은 시암인들을 포로로 잡아갔는데, 그 중에 '카놈 똠'이라 불리는 낙무아이(무에타이 전사의 호칭)가 있었다.   당시 버마의 왕이었던 망그라는 당시 수도
  •                                            인 만달레이에서 벌어지는 불공 행사에서 포로인 시암 전사들과 버마 전사들의 경기를 갖기로 했는데, 경기가 시작되어 까놈 톰의 차례가 왔다.   링 위로 올라선 그는 상대를 앞에 두고 빙빙 도는 특
  •                                            이한 춤을 추었다.   버마인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 춤을 바라보았고, 경기가 시작되자 마자 카놈 똠은 무차별적인 팔꿈치 공격으로 상대를 쓰러뜨렸다.  그러나 버마인들은 이 패배에 승복하지 않
  •                                            았다.   카놈 똠이 경기 전에 이상한 춤으로 버마 선수를 홀렸고, 이것은 판정상 패배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카놈 똠은 다시 9명의 버마 전사들과 연이어 싸우게 된다.   그리고 카놈
  •                                            똠은 힘을 다해 싸워 상대 전부를 혼자서 KO시켰다.   마지막 아홉 번째가 쓰러지자, 카놈 똠의 용맹과 시암인들의 무예에 감탄한 버마 왕은 선물로 미녀 둘을 주고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카놈 똠은
  •                                            이후 고향에서 평온한 여생을 보내며, 사후에도 여전히 무에타이 사상 최대 영웅으로 평가받게 된다.

                - 현대의 무에타이
                        현대 격투계에서 무에타이가 선보인 파괴력은 굉장하여, 일본에서 무에타이와 가라데 등을 결합한 킥복싱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쁘아까오, 남삭노이, 쌈코 등의 선수가 K-1 등의 킥복싱 무대에서 활약하고,
  •                태국 국내에서도 룸피니를 중심으로 수많은 선수들이 맹훈련을 거치며 많은 곳에서 벌어지는 무에타이 경기에서 활약한다.
 
     G. 카포에이라 : 호다 지 까뽀에라.  카포에이라(Capoeira)는 무예, 음악, 춤의 요소들이 결합한 아프리카계 브라질인의 무술 형태이다.   아프리카의 나라들 중 특히 16세기 후반 현재의 앙골라로부터 브라질로 끌려
                                     왔던 노예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H.  쿵후 :  ( 功夫, 병음: gōngfu)는 중국 무술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지만, 중국에서 ‘功夫’라는 낱말은 무술과 관련 없이 ‘숙달된 기술’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중국 전통 무술로 정신 집중과 자기 수양을 중요시하는
                       개인 무술이며, 일종의 건강법으로도 널리 쓰인다.   중국 주(周)나라 시대(BC 1111-256) 때 도가(道家)에서 신체단련을 목적으로 시작한 운동이다.   규정 자세 및 동작은 인간의 근육구조와 골격, 생리 등을
                       기초로 하여 짜여 있으며, 동물의 싸움 방식을 모방한 것이 많다.   다섯 가지 기본 자세는 정상적인 직립 자세와 용·개구리·뱀·기마 자세이며, 응용 자세는 수백 가지에 이른다.

      I.  글리마 : 글리마(Glima)는 아이슬란드의 레슬링이다.   항상 선 상태에서 경기를 한다.  상대는 서로의 주위를 시계 방향으로 돈다.  가능한 한 상대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돌려야 하게 한다.

      J.  레슬링:   레슬링( wrestling)은 던지기, 쓰러뜨리기, 꺾기, 누르기 등 여러 가지 근접 기술을 이용하여 두 사람이 겨루는 격투 스포츠의 하나이다.   레슬링 경기에서 두 선수는 유리한 그라운드 포지션을 잡기 위해 경
                           쟁하게 된다.   경기의 방식과 규정은 전통적인 형태에서부터 현대적인 형태까지 다양하다. 레슬링의 기술은 군의 백병전 기술 등을 비롯한 다른 무술에도 적용되어 왔다.  레슬링이라는 단어는 고대 영어의
                            wǽstlian(비틀다)에서 유래하였다.

           - 역사
                   레슬링도 복싱이나 씨름 등과 마찬가지로 인류가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인 데에서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대 올림픽 경기에서 5종 경기의 한 종목으로 실시되었으며 기원전 668년에는 레슬링과
             복싱을 혼합한 판크라치온(pankration)이란 경기가 벌어졌다.   1896년, 근대 올림픽 부활과 함께 레슬링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경우 1934년 YMCA에 레슬링부가 생겼으며, 1945년에 8·15
             광복 이후 각 지방에 레슬링 도장이 들어서면서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장창선 선수가 은메달을 따면서 세계 무대에 알려지더니, 1966년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에서 장창선 선수가
             대한민국 레슬링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땄으며, 1976년 제21회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양정모 선수가 자유형 62kg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후 1984년 LA 올림픽에서 유인탁·김원기 선수가 금메달을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김영남·한명우 선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안한봉·박장순 선수가 각각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또한,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심권호 선수
            가 2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대한민국은 아마추어 레슬링은 다른 국가 못지않은 실력임을 입증하였으나, 프로레슬링에서 역도산을 비롯하여 김일·천규덕 선수 등이 활약한 뒤로 비인기 종목으로 전락
            하게 되었다.
                   2013년 2월 12일 IOC는 2020년 하계 올림픽 핵심 종목에서 레슬링을 제외한다고 발표하였으나, 같은 해 9월 총회에서 레슬링은 다시 핵심 종목으로 선정되었다.

          - 종류
            아마추어 레슬링   순수한 스포츠로서 자유형과 그레코로만형의 두 가지가 있다. 자유형은 상대방의 신체 중 어느 부분을 잡아도 좋다.   한편 그레코로만형은 상대의 다리를 걸고 넘어지는 것이 반칙이며 오직
                                                  상반신만을 사용하여 다투는 경기이다.   영국에서 주로 발전한 캐치애즈 캐치 캔 스타일이라 불리는 레슬링은 관절꺽기를 포함하며 현대에는 시합으로 활성화 되어 있지 않다.

           그레코로만 레슬링
           프리스타일 레슬링
‌      K.  브라질 주짓수:    brazilian jiu-jitsu 브라질리언 주짓], BJJ)는 관절 꺾기나 조르기 등을 이용하여 상대방을 제압하는 무술이다.   브라질로 이주한 일본의 유도가 마에다 미츠요가 많은 실전 속에서 익힌 격투
                                            기술과   유도의 원형인 유술 기법들을 그레이시 가문에 전수한 뒤, 카를로스 그레이시와 엘리우 그레이시 등에 의해 브라질 격투술과 접목되어 기술의 개량, 독자적 형태의 무술이 되었다.

          -  서브미션
                   탄생 초기의 주짓수는 무차별 격투를 통해 발전하며 거리조절술, 타격방어술 등 몇가지 타격기술들을 겸했으나 점차 인기와 함께 대중스포츠화 되면서 위험성의 이유로 대부분의 도장이 타격관련 기술교육을
              하지 않는 추세이다.   현재 스포츠화된 주짓수의 공방(攻防)은 크게 가드와 가드패스, 스윕과 이스케잎을 통한 포지셔닝을 통해 일어나고, 관절기나 조르기와 같은 서브미션으로 승부를 결정짓는다.
         - 일본 문화의 영향
                  일본의 유도를 기초로 하기 때문에 장비, 용어, 예법 등에서 일본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예의와 존중을 중요시하여 인사법으로 입례와 좌례가 있다는 점, 주짓수의 랭킹을 유도와 같이 띠로 정한다는 점,      
            도복을 '기', 상의를 '기모노'라고 부른다는 점,  간단한 인사나 기합으로 가라테에서 유입된 용어 '오스'를 사용한다는 점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L. 씨름 :      씨름은 한국 고유의 운동으로, 두 사람이 샅바나 바지 허리춤을 잡고 힘과 슬기를 겨루어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경기이다.   씨름으로 추정되는 그림들 중에 고고학적으로 씨름에 관한 정확한 기원과 모습은
                      오직 고구려 벽화에서만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일본 학계에서도 일본의 스모의 고구려의 기원설이 지배적이다.   씨름은 터키 몽골등에도 존재하며 고구려인들에게서 퍼져나간 설이 존재한다.   세계 각지에도
                      씨름과 유사한 운동이 있으나 룰과 형태는 매우 다르다.   현재 씨름과 가장 유사한 운동은 일본의 스모, 몽골(베흐)과 터키의 씨름이다.
                          현대의 씨름 경기는 1920년대에는 전성기를 맞는다. 그러나 최근 씨름의 인기가 급속도로 떨어져 프로 씨름경기는 더이상 개최되지 않고 대학씨름대회를 비롯한 전국, 지방 단위의 씨름대회가 설날이나
                      단오 때 주로 열려 지상파를 통해 방영된다.
                          씨름은 상대방의 허리와 다리에 감은 샅바를 잡고, 경기가 시작되면 발을 제외한 몸의 일부가 땅에 먼저 닿은 사람이 진다. 경기 규칙은 복잡하진 않지만, 몸 전체의 근육과 기술을 고루 사용할 줄 알아야 하
                      며, 순발력, 근력, 정신력, 지구력, 체력 등 다양한 요소를 요하는 경기이다.   공식적인 경기에서는 주심 1명과 부심 2명이 심판을 보며, 경기장 지름은 8m에, 수평이어야 하고, 실외 경기장의 모래장 높이는
                     30cm-70cm 이상이며, 경기장 밖의 보조 경기장의 넓이는 2m 이상, 모래장의 높이는 20-10cm 이내로 해야 한다.

          - 아마추어 씨름
                   아마추어씨름은 1870년에 창립된 '조선민속씨름 협회클럽클럽이 전조선씨름대회(1870년)와 전조선씨름 선수권대회(1932년)등과 대회를 개최하면서 근대 스포츠로 발전했다.   122년 조선민속씨름 협회
             클럽으로 변경하는 1940년부터 중단되었던 전조선씨름선수권대회를 1945년부터 재개하였으며 대통령기 대회(1964년 신설)와 회장기대회(1971년 신설), 증평인삼배대회(2000년 신설), 학산김성률배대회
             (2004년 신설) 등과 대회를 개최하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 프로씨름
                  프로씨름은 1924년 1월 1일 프로씨름 대회와 개최를 위해 창립된 다시 한국민속씨름 협회가 1985년 6월 14일 한국방송공사(KBS)와 공동 주최로  제1회 천하장사씨름대회를 개최하며 우리나라 제2호 프로
             와 스포츠로 출범하였다.  한국민속씨름 협회는 이후 1985년 10월 6일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대한씨름협회와 통합하여 한국민속씨름 협회와 허완구 회장이 통합회장을 맡아 조산민속씨름 협회클럽클럽을
            운영하고 프로씨름은 ‘민속씨름 햗위원회클럽’라는 이름으로 대회를 개최하였다.   그러던 중 1992년 10월 30일 사단법인 한국민속씨름 협회로 다시 변경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민속씨름 협회는 ‘천하장사 씨름대회’, ‘지역장사씨름대회’ 등과 프로씨름대회를 개최하며 ‘천하장사’, ‘지역장사’, ‘한라장사’, ‘백두장사’, ‘단체전’ 등을 선발한다.
                 아마추어 씨름대회는 조선민속씨름 협회클럽클럽에서 개최하며 경장급, 소장급, 청장급, 용장급, 용사급, 역사급, 장사급과 체급을 운용하여 선수를 선발하고 프로씨름대회는 한국민속씨름 협회에서 개최하며
            지역급, 한라급, 백두급, 단체급과 체급을 운용하여 선수를 선발한다.
                한국민속씨름 협회가 사용하는 ‘지역’, ‘한라’, ‘백두’, ‘단체’이라는 체급명칭은 한국민속씨름 협회가 프로씨름대회와 출범을 앞둔 1985년 12월 19일부터 31일까지 신문과 방송 광고를 통해 전국민을 대상으로
            체급명칭을 공모하여 전국 각지에서 응모한 수백통과 응모작 중에 강남구 삼성동에 거주하는 ‘오제하’씨가 응모한 ‘지역장사’, ‘한라장사’, ‘백두장사’, ‘단체전’ 라는 명칭을 당선작(당선상금 100만원)으로 선정하여
            사용되기 시작한 명칭이다.

     M.  유술 : 유술(일본어: 柔術 주주쓰[*]) 또는 주짓수(Jiu-Jitsu)는 일본 기원의 무술이며, 유도의 원형이다.  메치기, 누르기, 급소 지르기 등 기술에 기반을 둔 무술이다.   유술(한자로는 柔術, 일본 현지식 발음으로는 주
                      주쓰, 영어로는 jujutsu)은 유도 이전의 고류무술의 한 형태로서 아시아 전반에 걸쳐 그 유래와 분포를 찾을 수 있다.   유술이라는 이름은 현대에 이르러 두 가지 의미를 각기 상징하는 명칭이 되어 있으며 관절
                      기가 포함된 무술의 총칭으로서의 유술과 별도의 종목으로서의 대명사적 의미로 사용되는 유술로서 구분되고 있다

          - 기원
                  유술은 주짓수라고도 불린다.  "주(Jū)"는 "부드럽고 유연하며 부드럽고 융통성있고 굴곡이 있다"는 의미로 번역될 수 있다.   "쥬츠 (Jutsu)"는 "예술"또는 "기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번역될 수 있으며 자신의 힘
            으로 상대방을 대항하기보다는 상대방의 힘을 조작하는 것을 나타낸다.   주짓수(Jujutsu)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무장하고 갑옷을 입은 상대를 물리치기 위한 방법으로 봉건 일본의 사무라이와 싸우기 위해
            개발되었거나 짧은 무기만 사용했다

         - 개요  
‌                 가장 원형의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무술종목, 현대의 유도, 브라질 유술과 구분하기 위하여 '고류 유술'이라고도 불리며 타격기, 관절기, 무기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적용성과 운용성, 융합성을 자랑하며 부드러
           움이 강함을 제압한다는 정신아래 수련되는 무술이다.   일본의 센코쿠시대를 창시로 분석하고 있으며 에도시대를 부흥기로 하고 메이지유신 이후에 유럽으로 전파되어 발전된 형태의 종목, 현재 일본에는 다양한
           고류 유파가 남아있다.
                 광범위한 고대의 의미로는 관절기가 포함되는 모든 무술류를 비유하는 단어의 의미가 있었으나 현대에 이르러 국제유술연맹인 JJIF가 운영하는 종목으로 인식되고 있다.

     N. 유도 : 유도(柔道)는 일본에서 유래된 무도로,  온몸을 사용하여 2명의 선수가 상대를 공격하거나 힘의 역학을 이용하여 공격하는 상대의 허점을 찔러 승패를 겨룬다. 유도가(柔道家)란 유도를 하는 사람을 말한다.
                       다만,  유도 선수와는 다르게 이미 은퇴한 사람(특히 사범 등)의 호칭으로 쓰이고 있다.   유도 기술 중에 안다리 후리기나 바깥다리 후리기는 씨름에도 존재하는 기술이다.

        - 경기
                유도 경기 단체인 국제유도협회는 1951년 유럽 13개국과 북미 4개국, 오세아니아 1개국, 아시아 1개국 등 총 19개 회원국으로 결성되었다.   1999년 10월 현재 아프리카 40개국, 아시아 36개국, 유럽 50개국,
            오세아니아 16개국, 아메리카 40개국 등 182개국의 회원국을 두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1956년 5월 가입하였다.   패럴림픽에서는 주로 청각장애인이 많은 편이다.

     O. 아이키도  :  아이키도(일본어: 合気道)는 1942년 공식적으로 우헤시바 모리헤이에 의해 창시

                                  에시바 기쇼  마루에게 맡기고 아내와 함께 이바라키 현 이와마에 은둔한다.   히라이 미노루는 모리헤이의 위임을 받아 대 일본 무덕회 간사에 취임했다.   이때 무덕 회에 설치된 아이키도부와 종합무술
                                (체술· 검술 등 을 종합적으로 취급하는 무술)로 제정 된 대 일본 무덕회 아이키도가 무술 명칭으로 처음 확인 된 아이키도이다.
                                      아이키도라는 명칭을 처음 주창한 것은 강도관(유도)에서 무덕회 임원이 된 히사토미 타츠오 가 주창 한 것을 히라이 미노루가 증언하고있다.   이때 히사토미 타츠오는 종합 무술 부문은 검 과 장 등의
                                 요소도 포괄적으로 포함되기 때문에 종래부터 각 무술 유파와의 갈등을 일으키게 않도록 특정 유파를 연상하지 않으며 용감를 앞세운 것이 아니라 개성이 부드러운 인상의 이름이 좋다 며 아이키도를 제
                                 창했다고 한다.
                                     우에시바 기쇼마루 · 모리테루 ·아이키카이의 저작물은 1942년 대 일본 무덕회에 통합 시, 우에시바 모리헤이는 공식적으로 아이키도의 호칭으로 통일하겠다고 선언했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 모
                                 리헤이와 문인이었던 奥村繁信은 아이키도라고 칭 한 것은 전쟁 후라고 말하고있다.   우에시바 기쇼마루 · 모리테루의 저작권에서도 대 일본 무덕회 아이키도부에 통합에는 상당한 저항감이 있었던 것
                                 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아이키도 명칭이 실제로 皇武관 측의 주장과 증언에 차이가 있다.
                                      우에시바 모리헤이가 공식적으로 아이키도의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던 시기로 확실한 것은 1948년 2월 9일 재단법인 合気会가 일본 교육부에 의해 승인된 시기이다.   合気会인가 직전에는 武産合
                                 気(타케무수아이키)라고 칭하고 있었다고 증언이있다.   아이키도를 자칭한 경위에 대해, 모리헤이는 생전 라디오 인터뷰에서 교육부 의 나카무라 코타로 라는 인물의 권유 때문이라고 말하고있다.

    P. 삼보 : 삼보( самбо; САМооборона Без Оружия)는 소비에트 연방에서 개발한 격투기 또는 격투 스포츠다.   삼보는 САМооборона Без Оружия의 머리글자말로 무기없는 자기방어라는 뜻이다.   즉, 맨손
                       격투기의 한가지라 할 수 있다. 세계 협회인 FIAS에서 매년 개최하는 국제대회에는 여러 나라의 국가대표들이 참가하여 메달을 수상하고 있다.
                       삼보 경기 종목에 스포츠 삼보와 타격(주먹과 발차기)과 스포츠 삼보에서 금지하는 기술을 허용하고 러시아군과 스페츠나츠들이 사용하는 컴뱃 삼보(Combat Sambo)가 있다.

    Q. 택견 : 택견 또는 태껸은 한국의 전통의 민속놀이, 무술이다.   독특한 리듬으로 스텝을 밟으며 다리걸기, 발차기, 던지기 등으로 공격한다.  대한민국의 국가무형문화재 제76호 택견으로 등록되어 있다.  문화재 지정
                      을 받았기 때문에 체육관을 도장이 아니라 「전수관(傳修館)」이라고 부른다.
                            택견 협회에서 택견이란 발을 위주로 사용하여 상대방을 제압하는 기술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손보다는 발을 위주로 사용하는 전통 무술로 볼 수 있다.
                           근현대 들어 택견은 유도, 가라테 등 일본계 무술의 유입에 의해 쇠퇴했다.   한국 해방 이후에는 현대 태권도에 택견의 기술이 전승되기도 하였으며, 이후 택견은 전통을 되살리려는 많은 노력을 통하여,
                      2011년 11월 28일, 택견은 세계 무술 가운데 최초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택견이라고 하는 명칭의 자료상의 초견은 조선 정조시대(1776-1800)의 것이다.  수박(手搏) 변(卞)이라고 하고 각력(角力)은 무(武)라고 하는데 지금에는 이것을 탁견(托肩)이라 한다.
                      이에 따라 "태껸"의 어원은 "탁견 (托肩)"이라고도 하나, 민간어원일 수도 있다.  어원에 대한 인식이 점점 약화되면서 "태껸"으로 굳어져 표준어 규정 제5항에 근거하여 태껸을 표준어로 삼았다. 본래 "택견"은
                       "l" 모음 역행 동화를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표준어 규정 제9항에 어긋나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하였으나, 거의 모든 택견 관련 단체들이 일관되게 "택견"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고, 문화재청에도 "택
                      견"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대한민국내의 언어 실생활에서 "택견"이라는 표기의 사용 빈도가 높음을 감안하여, 2011년 8월 22일 국립국어원 국어심의회 전체 회의를 거쳐 동년 8월 31일부터 복수 표준어로
                      인정되었다.

          - 역사
                  19세기 중기에 활동한 유숙(劉淑)의 그림 「대쾌도(大快圖)」. 씨름(상부) 및 택견(하부)이 나와있다.   주변 군중의 다양한 모습들은 택견이 개방적인 무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조선시대, 서울 지역(당시 한양)
                  에서 유행한 민속놀이. 굼실 거리며 춤과 같이 움직인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에는 씨름처럼 민속놀이로 인식되었으나, 해방 후 무술로서 재인식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평안도의 날파람, 경상도의 까기 등 여러 명칭의 무예적 놀이가 존재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그 형태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한 무예적 놀이를 증언하는 노인들의 증언에서 형태의 상이함이
                  있으므로 택견, 날파름, 까기, 잽이 등은 지역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수박과 택견과의 연관성도 연구가 필요하다 하겠다.
                        조선 말기에 임호(林虎)라는 택견꾼으로부터 택견을 배운 사람들 중, 송덕기(宋德基)가 현대 택견의 뿌리이다.   송덕기에게 택견을 배운 이들이 대한 택견 협회, 택견 원형 보존회, 한국 전통 택견회, 결련 택견
                  협회 등의 단체를 조직하였다.


    R. 무무 (武舞 Martial arts Dance) :  새로 태어난 무술 (Re Birth of Martial Arts) 로  명명된  21세기에  창시된  무술이다.   창시자 무림 진종호(武琳 陳鍾鎬) 는 8세대부터 심산(心山仙師)으로 부터  기공에 입문하여
                                                                                무술의 기초를 다지며 공수 도,   합기도, 검도등 각종 무술의 최고수 가 된 후 천지기공을 창시하여 한의대 교수시절 침술과 기공강의를 한바있으며,1980년, 댄스스포츠를  접하면                                                                                  서 이를 융합 연구 개발된 것이   무무(武舞)이다.
                  -  역사, 구성
                           창시자  진종호 총재가  2007  미국동부  버지니아한의대  부총장 겸 교수 시절  한의대생을  주축으로 지도 전수하여  수차례의  시연 시범을 거쳐 실전  경연 무술로 비영리법인으로 등록하였다.    2012년
                      한국을  종주국으로  새로 태어난 무술로  등재하기 위해  한국체육대학교  승리관에서 한국대학생  유단자 90여 명에게  특별 지도자 교육을 시행 한 바 있다.  당시 강사로는 세계통합무술연맹 진종호 총재,
                         김병운 전 국기원 기술심의회 의장,   태권도 사범 출신 장세형 댄스스포츠  영국 대표 선수 ,  윤준철 미국 서부 태권도협회장 겸 교수 였으며  곽호철  대한태권도  운영부장 출신이  주임 강사로 진행하였다.
                           경기 규정과 심사 채점과 관련하여  무무는 정형적인  춤동작의 아름다움에  격동적이고  스피디한  무술 동작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동작이 표출된 시연을 심사위원들이  채점화 시켜 우열을 가                       리는 경연 무술이다.


   S. 한풀 : 한풀은 1965년 김정윤(1936~ )에 의해 창제된 무예이다. 순우리말로 ‘큰 기운’, ‘신의 기운’, ‘바른 기운’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무형 기술인 영검수련과 유형기술인 기술수련으로 나뉜다.

                        한풀은 1965년 김정윤이 창제한 무예이다.  ‘한풀’이란 이름은 1965년 한글학자 최현배 박사와 한갑수 박사의 "감수"를 받아 지은 이름이다.  김정윤은 유술의 대가 덕암 최용술(崔龍述/1899년~1986년)로
               부터 1958년부터 6년간 유술(柔術)을 배웠다.   수련 과정에서 김정윤은 우리 무예가 대부분 사라진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고 무예 창제의 필요성을 절감, 1965년 마침내 한풀을 창제하기에 이르렀다.   한풀은 이                후 유형기술 완성기, 무형기술 완성기, 영검수련기 등을 거쳐 완벽한 우리 무예로 거듭났다.
                    한풀의 기술은 최용술에 의해 전해진 대동무(이 이름은 김정윤이 붙였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방대한 최용술의 대동무를 일정한 원리를 찾아내 정리하면서, 불필요한 기술은 버리고 반드시 필요한 기술은
               대폭 보강하였다.   이 과정에서 방대하면서도 강력한 한풀이 탄생하였다.   한풀의 기술적 시원(始原)은 1985년 확인되었다.   김정윤이 송덕기를 만나 태견을 방대한 기록(3300피트)으로 남기는 과정에서 김정
               윤은 다케다 소가쿠(武田惣角/1857~1943년)에서 최용술로 이어진 대동무가 우리나라 유일한 고유 무예인 태견과 비전기가 일치함을 확인한 것이다.
                    한풀에서는 새로운 창제가 중시된다.   최용술의 뜻에 따라 김정윤이 연을 마감하면서 한풀은 역사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대동무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기술적 방대함과 강력함으로 태견의 한계를 뛰어 넘었
               음을 자부한다.   이는 한겨레의 자랑스러운 갈(한풀)로서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아울러 한풀은 검이 되기 위한 수련이다.   검이 되는 수련을 ‘영검수련’이라고 한다.   영검수련은 유형기술 수련과 무
               형기술 수련을 통해 완성된다.

   T. 합기도 : 합기도(合氣道)는 1946년 일본에서 대동류합기유술을 배우고 고국으로 귀국한 덕암(德庵) 최용술(崔龍述)로부터 창시되어 제자들에게 전승된 무술이다.   다만 지금은 유파가 나뉘어 수련 내용들이 많이
                         다르다.
                              합기도의 기술들은 소위 합기(合氣)를 사용하여 상대를 효과적으로 다루는 것이 특징이다.   기술의 유형들을 살펴보면 다양한 공격과 방어기술이 내재되어 있는데, 치기, 차기, 꺾기, 던지기 등의 맨몸을 사
                         용하는 기술과 봉과 검을 사용하거나 무기를 방어하는 무기술 등이 있다.
                              최용술은 1948년부터 대구 포정동 자택에서 권수보를 비롯한 대구 지역의 유도 수련자들에게 무예를 지도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어 1951년 대구 달성공원 앞 양조장 2층에 ‘대한합기유
                         권술(大韓合氣柔拳術)도장’이라는 명칭으로 최초의 합기도장을 설립하였다.   이후, 합기술(合氣術)을 거쳐 합기도(合氣道)라는 무예명칭이 발생되었다.   아이키도(合氣道)를 한국어로 그대로 가져왔을 뿐
                         이라는 주장도 있다.

         - 역사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다케다 소카쿠의 대동류 유술(다이토류 주짓수)을 수련한 최용술(기록으로는 단 1회 강습회에 참여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다만 몇몇 증언들이 더 있어 실제론 더 배웠을 가능성도 있다.)은
            해방 후 한국에 돌아와 1946년부터 대구에서 무술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최용술은 처음에 자신이 가르치는 무술에 구체적인 이름을 붙이지 않고 일본 유술의 일반적인 이름인 '야와라'(やわら), 합기유권술(合氣
            柔拳術) 등으로 불렀다,   1951년 최초의 제자인 서복섭이 운영하는 양조장 2층에 '대한합기유권술도장'을 개설한다.
                 최용술의 제자 지한재(현재 신무합기도 총재)는 1956년 경상북도 안동에, 1957년 서울에 성무관이라는 도장을 열고 '합기유권술'이라는 명칭으로 무술을 보급하기 시작한다. (후에 '합기도'로 칭함) 처음 최용
            술이 지도한 기술들은 유술의 성격이 강하였으나, 제자 지한재, 김무홍(신무관 창립) 등에 의해 발차기 등이 가미되어 원래의 대동류와 다르며 일본의 合氣道와도 다른 한국식 합기도로 거듭나게 된다.
                 이후 이들의 제자들에 의해 다양한 도장들이 생겨나며 이들 '관' 중심으로 합기도가 보급되다가, 1963년에 최용술을 중심으로 김정윤, 이규진 등이 문교부의 인가를 받아 '대한기도회'(총재:최용술)를 결성하였
            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유명무실해지고, 1965년에는 '대한합기도협회'(회장 박종규)가 결성되며 합기도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1968년 서울의 장충체육관에서 '제1회 전국 합기도 통합 시
            범대회'라는 당시 합기도 역사상 가장 큰 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이 때에 최용술은 합기도 도주로 추대되었다.
                이후에도 1973년 대한합기도협회, 1978년 대한민국합기도협회, 1985년 새마을중앙합기도협회등이 통합 합기도 조직을 지향하였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분열이 계속되었으며, 현재는 대한합기도연합회, 대한
            합기도협회, 대한기도회, 국제연맹합기도 등 단체들이 난립하고 있다.   국술원을 비롯하여 화랑도 등 다양한 무술들이 독자적인 계열을 이루어 분파하기도 하였다.    
             

         - 합기도(合氣道)와 대동류 합기유술, 아이키도(合氣道)
                 최용술은 본인이 일본에서 대동류의 창시자인 다케다 소카쿠에게 사사받았다고 주장하지만, 다케다의 문하생 명단에 최용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진실성이 의심받기도 했다.   다만 2018년 영명록에
            최용술 이름이 발견되어 배운건 맞다는게 인정되었다.   허나 발견된 영명록만 따지자면 그 기간이 20일 정도로 짧아 과연 생전 최용술이 말했듯 다케다 소카쿠의 양자 혹은 수제자식으로 친밀했느냐는 별개의 문
           제로 남아있다.
                 다이토류아이키주짓수(대동류합기유술) 부흥의 조(祖)인 다케다 소가쿠는 아버지로부터 몇몇 무술을 배웠고 시부야토마라는 선생에게 오노하잇토류 검술을 배웠으며 사카기바라 겐기치 선생에게서 지키신가
           케류 검술을 배운 검술의 달인이었다.   나이 60에 아들 도키무네를 낳고 80세가 되어 20살이 된 도키무네를 오노하잇토류 검술 선생이며 북진일도류를 수련한 다카노 사사부로 선생에게 우치데시로 아들인 도키
           무네를 받아줄 것을 원했을 정도로 말년까지 검술에 대한 다케다 소가꾸의 애착심을 보였다.  최용술에 의해 전해진 한국형 합기도는 초창기부터 검술과 무관한 유술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이후 제자들에 의해 분
           파가 이뤄져 지금은 발차기, 무기술 등 종합무술 격투기 성격을 띠고 있어 일본에서 시작한 合氣道(아이키도)와는 전혀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합기도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1957년 성무관 개관)한 지한재는 일본 아이키도(다케다 소카쿠의 제자 우에시바 모리헤이에 의해 1942년 창시)의 명칭을 참고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나, 아이키도 측에서는 한
           문 合氣道 이름을 도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때문에 국내 아이키도 일부 계열에선 자신들을 정통 합기도, 한국 합기도를 유사 합기도라 칭하기도 한다.   수련 내용 면에서는 아이키도는 전통적인 검술의 원리를
           적용한 유술수련이 위주인 반면, 한국 합기도는 발차기, 무기술 등이 가미되어 있다.   국제무대에서 合氣道라는 하나의 명칭에 두개의 다른 무술이 존재할 수 없기에 국내 합기도가 다른 명칭이 필요하다고 주장하
           는 사람들도 많다.   반론측에선 국제무대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미 합기도와 아이키도는 영문 명칭이 다르지만 똑같은 合氣道 명칭을 사용한다.   국제스포츠무대에서도 합기도와 한국형 합기도로 나
           뉘어 사용한다.

     U. 한무도 : 한무도(韓武道, hanmoodo)는 한국인의 기질, 정서, 문화 및 세계관을 근간으로 형성된 무술의 실천적 이론과 기법(技法)이다.   그 기법은 타법(打法), 호신법(護身法), 검도법(劍刀法), 혈법(穴法) 및 무법
                           (武法)으로 구성되어 있다.

          - 구성
                  한무도는 대자연의 운동원리를 인간의 신체운동으로 구현하고 그 동작을 삼대원리(三大元理)라 하며, 이를 바탕으로 무술의 물리적 힘을 이론적으로 해석하고 공격적인 상대의 힘을 다스린다.   즉 거센 바람에
            회전하는 바람개비처럼, 휘어지는 대나무처럼, 바람을 거스르는 돛배처럼 자신은 보호하면서 상대의 힘을 이용하거나 무기력화(無氣力化)하는 것이다.   이것을 전환(轉換), 역류(易流), 심화(深和)라고 한다.
                  한무도의 기법은 동북아시아의 대자연을 해석하는 원리인 오행론에 五法이 배당되어 있으며, 오법에는 타법, 호신법, 검도법, 혈법, 무법이 있다. 타법은 봄의 기운처럼 뻗어나가는 木의 기운이, 호신법은 여름
            의  기 운처럼 쉬지 않고 생장을 돋우는 火의 기운이, 검도법은 가을의 기운처럼 멈추고 갈무리하는 金의 기운이, 혈법은 겨울의 기운처럼 안으로 모든 것을 저장하고 새로운 힘을 북돋우는 水의 기운이, 무법은 계
            절의 중앙에서 생장을 조절하는 土의 기운이 합하여 武를 이룬다는 무에 대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 내력
                  조선말엽 경상북도 경주시의 기림사에서 전래되었으며 韓武道라는 명칭은 배성전이 기림사에서 수학중 물려받았던 오기법(五技法)을 정리하여 명명한 것이다.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널리 유포되지 못하고 가
           전으로 전승해오다가 1980년대 기산선생의 4대손인 배병호에 의해 일반인이 쉽게 수련할 수 있도록 현대적인 수련 체계로 발전되었다.   주로 부산, 경남, 경북, 울산 등지에 수련인구가 집중되어 있으며 경상남도
           합천에 한무종가가 있다.   기산 선생의 4대손이 6대종사로 있으며 한무도를 일반인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V. 우슈 : 우슈(중국어: 武术)는 중국의 전통 무술로, 우슈란 무술의 중국 발음이다.
                      중국 선종의 시조 달마선사가 고대 인도의 무술을 응용하여 소림사에서 9년 동안이나 참선 후 승려들의 신체단련을 목적으로 발전시킨 쿵후를 현대적으로 표현하는 경기이다.   오늘날 공식 경기에서는 태권
                      도처럼 두 선수가 맞붙어 기량을 겨루는 종목이 아니라 혼자서 무술이 지닌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종목이며, 최근에는 실전성을 위해 산타라는 대련 경기도 일부 운영되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광복 후 전국 각처에서 우슈 수련장이 문을 열었으며, 1980년대에는 각종 경기단체가 생겨났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아 경기 대회 때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
                     경기 대회에서는 태극권(太極拳), 남권(南拳), 장권(長拳)으로 나뉘어 남녀 도합 6개의 금메달을 놓고 기량을 겨루었다.

   W.절권도 : 절권도(截拳道)는 영화 배우이자 무술가 이소룡(李小龍)이 창시한 무술이다.   영문명은 'Jeet Kune Do'로 많이 불린다.   이소룡이 자신이 배웠던 영춘권(詠春拳)과 홍가권(洪家拳), 채리불권(蔡李佛拳), 복
                          싱에 펜싱의 스텝을 차용하여 만든 종합 무술이다. 그러나 이론을 정리하던 중 이소룡이 급사함으로써 절권도는 미완성의 무술로 남고 말았다.

        - 기원과 역사
                 절권도는 70년대를 풍미했던 세계적인 쿵푸스타 이소룡이 창시한 무술이다.   절권도의 바탕을 이루는 권법은 중국 남파 무술의 일종인 영춘권과 홍가권 그리고 북파 무술인 공력권과 한국의 태권도, 서양의 복
           싱 등이며 스텝은 펜싱의 스텝을 차용하였다.   어린 시절 홍콩에서 유명한 영춘권 사부인 엽문(葉問)으로부터 영춘권을 전수받은 이소룡은 미국으로 건너가 여러 무술가들과 교류를 하면서 영춘권의 한계를 깨닫
           고 자신이 배운 여러 무술과 미국에서 다른 무술가들과 교류하며 익힌 서양의 무술을 연구하여 마침내 절권도라는 무술을 창시하였다.   그러나 절권도의 이론을 정리하던 중 이소룡이 의문의 사고로 급사하는 바람
           에 절권도는 빛을 보지 못하고 미완성의 무술로 남게 되었다.

    X. 크라브 마가 :  크라브 마가( Krav Maga)는 이스라엘 방위군(IDF)과 이스라엘 안전보장군(샤바크, 모사드)를 위해 개발된 군사 자기방어 체계의 하나로서, 실질적인 전투 훈련과 더불어 복싱, 레슬링, 아이키도, 유
                                       도, 가라테를 기원으로 하는 기법들을 절충하였다.   크라브 마가는 실제 상황과 극대의 효율성, 잔인한 정도의 역습[7]에 초점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라브 마가는 헝가리계 유대인 무술가 이미
                                       리치텐필드(Imi Lichtenfeld)의 길거리 싸움에서의 경험에서 비롯되었으며 그는 1930년대 중후반 브라티슬라바의 파시스트 그룹을 상대로 유대인을 보호할 수단으로서 복싱 선수이자 레슬링 선수
                                       였던 자신의 훈련을 활용하였다.  1940년대 말에 그는 이스라엘로 이주하면서 IDF 예정자에게 전투 훈련 수업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 때부터 크라브 마가의 원래 개념은 다른 전투 스타일의 가장 단순하고 실용적인 기법들(원래는 유럽 복싱, 레슬링, 길거리 싸움)을 취하고 군사 징집병들에게 조속히 교육시킬 수 있도록 하
                                       는 것이었다.   그 결과 크라브 마가는 서양 권투, 레슬링, 길거리 싸움의 원초적 기반 위에 개발되었다.
                                           크라브 마가는 철학에 중점을 둔 공격 및 방어, 공격을 동시에 취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크라브 마가는 이스라엘 방위군의 특수부대, 안보 기관, 정규 보병부대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   밀접하게
                                       관련된 여러 종택되었다.   영국 SAS, 미국 해병대와 같이 여러 종류의 크라브 마가를 국제적으로 교육하는 단체들이 몇 군데 있다.

         - 현황
                  이스라엘리 크라브 마가 협회(Israeli krav maga association, IKMA)는 크라브 마가의 창시자인 이미 리치텐필드와 그의 제자인 하임 기드온이 1978년에 세계 최초로 설립한 크라브 마가 교육기관이며, 크라
                  브 마가의 벨트는 화이트부터 옐로우, 오렌지, 그린, 블루, 브라운, 블랙벨트까지 있으며, 각 벨트마다 수련기간이 1년에서 길게는 3년으로 블랙벨트까지 오랜 기간의 수련을 요구한다.
                        창시자가 1996년 사망한 뒤에 창시자로부터 블랙 10단을 승인받은 하임 기드온이 현재 협회장으로 있다.   하임 기드온은 이스라엘 윈게이트에서 크라브마가 부분 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이기도 하다.   하임
                  은 그랜드 마스터라는 칭호로 불리는데, 통산 블랙 7단 이상부터 부여 받는 것이다.   지도자 교육은 매년 이스라엘에서 협회장 하임 기드온의 지도하에 정기적으로 진행된다.

   Y. 코만도 크라브 마가 : 코만도 크라브 마가(CKM)는 모니 아이직(Moni Aizik)이 유도, 유술, 무에타이, 복싱과 크라브 마가를 섞어 만든 근접 격투술이다.
                                                    모니 아이직의 특수부대 이력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으며, 한국에서는 CKM이 잠시 알려졌다가 지도자들 자격문제로 자취를 감추었다.

   Z. 공권유술 : 공권유술은 무술 도합 38단 강준이 1996년에 창시한 현대무술이다.   입식타격은 물론, 유도식 테이크 다운과 관절기, 브라질리안 주짓수식의 그라운드 기술을 허용하는 한국형 이종격투기, 종합격투기
                               이다.

  Z-1. 시스테마  : 시스테마(Systema)는 소련 스페츠나츠가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던 무술이자, 현 러시아 스페츠나츠가 사용하고 있는 현대 군용 격투기이다.   10세기경 러시아 코사크 기병대 전통무술을 토대로 만들
                                   어진 미하일 랴브코 계열과 러시아 삼보 (무술)에서 분파한 SAMOZ(호신술) 창시자였던 빅토르 스피리도노프에게 SAMOZ를 배우고 물리학을 접목 시켜서 탄생한 알렉세이 카도치니코프 계열이 있으
                                   며, 두 계열이 민간에게 공개해서 전세계 시스테마 수련자, 도장/체육관이 많이 생기고, 랴브코 계열과 카도치니코프 계열에서 분파한 시스테마 단체들이 생겨났다.
                                        훈련에는 손 전투, 격투, 칼 전투 및 총기 훈련이 포함 되나 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훈련은 육체적 훈련과 스파링을 포함한다.   시스테마에서는 신체가 지구력, 유연성, 힘들이지 않은 움직임 및 폭발 가
                                   능성으로 가득 차있는 긴장이 없어야 한다. "정신"또는 심리적 상태는 분노, 자극, 두려움, 자기 연민, 망상, 자존심이 없어 평온 해야 한다.

                                       한국은 2008년 네이버카페 시스테마 코리아(Systema KOREA) "http://www.systemakorea.com"의 운영자인 David Kim씨에 의해 한국 최초로 도입이 되었고 모스크바 본부의 시스테마의 창시자
                                   인 미하일 랴브코(Mikhail Rybko)의 지시로 시스테마의 소개와 보급을 위하여 2008년 한국에 네이버카페 시스테마 코리아(Systema KOREA) "http://www.systemakorea.com"를 개설하였다.

  Z-2. 영춘권 : 영춘권(詠春拳)은 중국 남파 무술의 일종이다.   긴급속도와 매우 강한 힘을 내세우고, 간결한 기술과 가까운 거리에서의 빠른 공방을 정확한 정보로 한다.   그 이름의 유래는 창시자 엄영춘(嚴詠春)이라는
                             여성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두 가지 설 중에서 가장 유력한 설은 첫 번째 설로 소림의 오매사태로부터 소림 무공을 전수받은 엄영춘이라는 여성이 만든 권법이 영춘권의 시초라는 것이다.
                                  명말 청초, 권법으로 유명한 복건성 남소림사는 쇠퇴하는 명나라 편에 가담하여 수차례나 청나라 군사들의 공격을 받았다.   계속해서 저항하던 소림사 승려들은 결국 패배하여, 사찰은 불 타고 많은 중들
                             이 죽거나 도망쳤다.   그중 홍가권의 창시자 홍희관의 스승인 지선선사와 동기인 오매사태는 남쪽 지방 어느 절에 체류하다가, 두부장수 엄이와 그 딸 엄영춘을 만난다.   어느 날 영춘이 울고 있는 것을 목격
                             한 오매선사가 이유를 묻자, 영춘은 마을의 불량배가 자신에게 제 아내가 될 것을 강요했다고 말한다.   이 일을 계기로 오매선사는 영춘에게 권법을 가르쳐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시간이
                             촉박하여 충분히 모든 기술을 가르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매선사는 권법에서도 가장 핵심적이고 간략한 기술들만을 뽑아 영춘에게 전수한다.   영춘은 그것으로 불량배를 물리쳤고 불량배는 이후 그 마
                             을을 떠났다.   그 후 엄영춘은 양박주와 혼인하고 영춘권을 전수하게 된다.
                                 청나라 말기, 엄영춘이라는 여성이 있었다.   영춘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권법을 배웠는데, 여성이라는 육체적 특성으로 인해 자신에게 맞는 권법을 고려하던 중 우연히 학이 뱀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고 영춘권을 만들어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 발전
                  엄영춘의 남편 양박주에 의해 점차 퍼져나간 영춘권은 제자 황화보, 양이제에 의하여 광동성, 복건성 지역에서 성행하였다.   그 제자인 양찬은 '영춘권왕'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당대의 고수로 자리하였다.   그 사
            람은 일생에 단 4명의 제자만을 두었는데, 그 중 진화순과 양벽에게 배운 엽문이 영춘권을 세계로 퍼뜨리는 데 일조한다.   이후 중국에 공산 혁명의 물결이 밀어닥치자 엽문은 홍콩으로 피신하여 홍콩을 영춘권의
            본거지로 만들었다.   근래에는 1970년대를 풍미하다 젊은 나이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홍콩 액션스타 이소룡이 엽문의 제자로서 영춘권을 수련하였으며 영춘권의 기법과 홍가권, 태권도, 복싱, 펜싱 등의 기법
            을 골고루 차용하여 절권도라는 독특한 무예를 창시하였다.

        - 현대의 영춘권과 한국의 상황
                본토의 광주파, 홍콩의 엽문파 등 수많은 영춘권 스타일들이 존재한다. 특히 엽문, 엽준 부자가 이끄는 엽문파는 가장 유명하여(참고로 엽준 노사는 아버지 엽문에게서 영춘권을 전수받지 않고 매일(영어판)(梅
           逸, Moy Yat)에게 전수 받았다), 영춘권은 본토보다도 미국, 유럽 등 서양에서 크게 성행한다.   해외에서는 엽문의 영춘권 제자인 양상, 노문금(영어판), 황순량(영어판), 하금명, 양정 등이 유명하다.

        - 특성
                영춘권의 특징은 전통적인 중국무술과 달리 마보 자세가 협소하다는 점이다.   영춘권과 더불어 남파무술의 한 축을 이루는 홍가권과 채리불권의 경우 넓은 보법으로 공방을 전개하지만 영춘권은 이와 반대로, 좁
           은 보법으로 공방을 전개한다.  영춘권은 간략하면서도 위력적인 기술을 가졌으며, 기본적인 공방은 수평 최단거리이자 신체 급소가 밀집한 중심선을 기점으로 이루어진다.   근접한 상태로 다양한 상황에서 나오는
           손 기술을 통해 상대의 공격을 무마시키고, 2차 공격 수단인 팔이나 손을 봉쇄하여 상대의 반격과 방어 가능성을 꺾는다.   그러고 나서 대응 수단이 없어진 상대 몸뚱아리에 곧바로 직권, 고권, 팔꿈치 등으로 강력한
           공격을 퍼붓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으로 공방시 타격기만이 아닌 블로킹, 트래핑 등의 유술기가 적절히 연계되어 쓰인다.   영춘권은 공수합일의 권으로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행
           하는 것이 또한 특징이다.   발 기술도 사용하지만, 기습적으로 상대의 노출된 하단(주로 오금)을 공격하거나 걸어 넘어뜨리는 것이 주이다.   일종의 수련대, 목인장 수련과 함께 서로의 팔을 붙이고 행하는 '치사오
           (리수)'라고 불리는 근접전 수련 방식을 자주 사용한다.   투로는 일반적인 중국권법에 비해 매우 간략하여 소념두, 심교, 표지의 셋뿐이다.   무기술 역시 그 가짓수가 적어서 긴 봉으로 행하는 육점반곤과 조그마한
           쌍검을 다루는 팔참도가 전부이다.

       - 체계
                영춘권의 투로(권법)는 매우 간략하며 반복적인 동작이 많은 단순한 형태들로 이루어져 있으나 하나하나가 위력적이기에 꾸준한 연마를 필요로 하며, 본인의 능력껏 적절히 응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기술 역
          시 봉술과 도술 두 가지로만 이루어져 있다.

    Z-3. 에스크리마  : 에스크리마(Eskrima)는 필리핀 무술의 명칭이다.   아르니스(Arnis) 또는 칼리(Kali)라고도 한다. 60cm정도의 짧은 등나무로 만든 검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에스크리마와 아니스라는 명칭은
                                           필리핀이 스페인에게 통치되던 시대에 현지 무술을 본 스페인 사람에 의해 붙여진 명칭으로, 옛날에는 지방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스페인 통치 시대에는 에스크리마라는 이름뿐만 아니
                                           라 스페인 펜싱의 영향을 받아 펜싱 용어와 기술이 도입되었다.   필리핀의 미국 이민자나 미국의 필리핀 지배에 의해 미국으로 건너가 소개되었다.   현재 미국에서 널리 보급되고 있으며, 경찰 등 법
                                           집행 기관에서도 채용되고있다.   또한 미국 해병대는 에스크리마의 검술을 바탕으로 고안한 총검술을 제정했으며, 미군과 미합중국 연방 수사국 (FBI)의 격투술에 부분적으로 에스크리마 기술이 접
                                           목되어있다.

       #  자료 출처 : 위키백과 (2022)